제2차 세계대전 중 3518명의 살인을 방조했다.
성공한다면 미, 러, 중에 이어 4번째다!
해당 페이지를 일부러 봉인한 듯하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백선생의 죽음에 뺀질뺀질한 강신명의 죄가 더 클까 아니면 살수차 조작요원(사진이 돌아다니는 젊은 경장이라고 한다)의 죄가 더 클까. 난 단언컨대 박근혜, 강신명의 죄보다 그 젊은 경찰의 죄가 크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책임은 책임이고 이 구체적 인명사고에 대한 책임은 현장의 방아쇠를 당긴 '손가락'의 죄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영상으로 본 그 장면은 '지나치게 강경했던 문제 있는 공권력'이기도 했지만 '잔인하고 무도한 개인의 폭력'이기도 하였다. 지휘선상에 있는 모든 공직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 별개로 당시 물대포를 조작한 경찰관 개인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응징이 필요하다.
서울대 국제대학원의 이근 교수는 듣기보다 말하기 좋아하는 한국 꼰대 세대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닥치고 따르라는 세상에 맞서는 힘'이란 부제가 달린 『도발하라』는 제목의 저서에서다. 그는 단군 이래 가장 교육을 많이 받고, 외국어 실력이 가장 뛰어나고, 정보력이 가장 우수하고, 가장 민주주의적인 환경에서 자라난 '2040세대'가 외국어도 잘못하고, 정보기술(IT)도 잘 다룰 줄 모르고, 정보 획득 능력도 훨씬 떨어지는 꼰대 세대로부터 "시키는 것이나 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받는 답답한 현실에 우리 사회의 심각한 모순과 불일치가 있다고 지적한다.
예전에 그런 영화 카피가 있었지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볼 것이다.' 곡성의 주제는 '무엇을 믿든, 믿고 싶은 걸 볼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대로 세상을 봅니다. '곡성'은 그런 우리 자신을 보여주는 거울 같은 영화에요. '저 사람이 범인이구나!' 하고 미끼를 덥석 물었지만, 우리는 단지 우리가 믿고 싶은 걸 본 것뿐입니다.
독일에서는 파시즘과 유대인 학살 같은 참상이 재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교육의 중요한 목적으로 삼지만, 그 교육이 가스실 체험, 죽어가는 유태인의 모습을 다룬 동영상 보기 따위로 이루어졌다면, 교육이 아니라 가혹행위라는 엄청난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의 여러 상황들을 너무 사실적으로 제시하고, 세월호 희생자의 마지막 순간을 학생들에게 떠올리게 하고 그 심정을 공유하게 하는 활동까지 포함한 전교조의 계기교육 자료는 비교육적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교육부의 반응 역시 비교육적이다.
여권 내에서 공천과 관련해서 벌어지는 최근의 행태는 퇴행의 극치를 보여준다. 박근혜대통령의 충복을 자처한 윤상현의원이 당의 대표를 겨냥하여 공천서 "그런 XX부터 솎아내라"고 발언하는 데 따른 오만함은 유신정권 말기 차지철 경호실장의 그것을 연상시킬 정도다. 민주주의 시대에 아직 독재의 망령이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표에 오전 8시 출발이라 적혀있어 7시 반부터 터미널에 나가 버스를 기다렸다. 8시가 넘어도 버스는 오지 않고, 터미널에 배낭을 맨 사람도 나밖에 없었다.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어 발만 동동거리다 관광안내소를 찾아갔다. 티켓을 보여주며 확인했더니, 그 버스는 오전 7시에 이미 출발했단다. 버스 회사로 갔더니 다음 버스는 내일 아침이고 표를 사려면 돈을 다시 내라고 하더라. 표를 보여주니 그건 여행사 직원의 실수라 자기네 소관이 아니라고 했다. 꼼짝없이 하루를 날리게 된 상황에서 티켓을 발권한 여행사를 찾아갔다. 버스 출발 시간을 잘못 적은 직원은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양손을 벌리고 어깨를 으쓱하더라.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어?